안녕하세요, 모대표입니다.
지난 1화에서는 ‘우리는 처음부터 인플루언서였을까’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. 오늘은 그보다 조금 더 앞, 제가 SNS를 시작하게 된 진짜 이유를 꺼내 보려고 합니다.
사실 이 이야기는 계정을 시작하고 1년이 훌쩍 지나서야, 처음 꺼낼 수 있었던 이야기입니다.
저는 SNS와 거리가 먼 직장인이었습니다
저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기업 정직원이었습니다. 금융권 전산 일을 했고, 야근이 많은 날들이 이어졌습니다.


매일 출근하고, 일하고, 퇴근하는 하루였습니다. 그래서 SNS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.
머리가 아파 병원에 갔습니다
어느 날부터 두통과 어지러움이 계속됐습니다.

머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,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하더군요.


대학병원에서 MRI를 찍었고, 모야모야병이라는 처음 듣는 병을 진단받았습니다.

진단을 받았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. 그 무렵 뉴스에서는 모야모야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.

의사 선생님은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 주셨습니다. 뛰지 말 것. 라면을 먹을 때 후 불지 말 것. 노래를 부르지 말 것.
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상의 작은 일들이, 하나둘 조심해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.
그리고 지하철에서 쓰러졌습니다
얼마 뒤, 지하철에서 쓰러졌습니다.


어지러웠던 기억밖에 없습니다. 눈을 감았다 떴는데, 몇 정거장이 지나 있었고 모르는 분들이 저를 깨우고 있었습니다.

잠시 뒤 119 구급대원분들이 들것을 들고 오셨습니다. 하지만 정신이 든 뒤라, 저는 그냥 집으로 향했습니다.


처음으로 죽음이 두려웠습니다
누군가 자리를 양보해 주셔서, 앉아서 집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.


그 자리에 앉아 집으로 가는 동안, 처음으로 죽음이 두려웠습니다.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.
처음으로, 죽음이 두려웠습니다.
나중에 그 시기를 돌아보며 이렇게 적은 적이 있습니다. 제 인생에서 너무나도 큰 암흑기였고, 죽음의 공포를 겪고 있던 시기였다고요.
제 몸보다 가족이 먼저 떠올랐습니다
결혼한 지 20년, 저는 어느새 완전한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.

이상하게도 제 몸 걱정보다 가족 걱정이 먼저 들었습니다. 내가 쓰러지면 아이들 학원비는 어떻게 하나, 그 생각부터 들더군요. 아빠라는 건 이런 건가 보다 싶었습니다.
제 걱정보다, 아이들 걱정이 먼저였습니다.
그때 첫째는 대학을 준비하고 있었고, 둘째는 영재고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.


내가 없으면 안 되는데… 아내는 외롭지 않을까…

가족 걱정만 하고 있는 제 모습에,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.
가장의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지는, 제가 힘들어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. 그 무게를 늘 제가 지고 있었다는 것을요.

“10년만 시간을 주세요”
그때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.
“10년만 시간을 주세요. 그동안 제가 없어도 가족이 힘들지 않게, 무언가를 만들어 놓겠습니다.”
저는 가족을 위해, 무언가를 해야 했습니다.

지금 돌아보면, 제 새로운 인생은 그렇게 아픔에서 시작되었습니다.
혹시 걱정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덧붙입니다. 다행히 지금은 병의 진행이 멈췄고, 오래 먹던 약도 끊었습니다. 그래도 평생 조심해야 하는 병이라, 지금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.
지하철에서 눈을 떴을 때,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제가 아니라 가족이었습니다. 그런데 그날 밤, 저는 아내에게 그 일을 말하지 못했습니다. 다음 편에서는 그 뒤로 이어진, 끝이 보이지 않던 시간을 적어 보겠습니다.